
3, 4, 5일차를 싸잡아 쓰는 이유는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이 나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어서 기록을 남기기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기록을 남겨도 되냐고 물을 정도로 함께한 사람들과 막역하지도 않거니와 설득을 시킬만큼 글솜씨가 대단하지도 않으므로 내가 개인적으로 잊기 싫은 기억들만 간단하게 남겨놓기로 한다.
스미냑 -> 짱구 -> 메데위
집결지 주소가 잘못된 바람에 택시가 엉뚱한 골목길에 나를 내려줬다. 제대로 된 집결지까진 1.5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늦기도 했고 택시도 안 잡힐 것 같아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발리의 길은 인도도 미비하고 운전문화 역시 매드맥스 버금가기 때문에 걷기가 썩 좋지는 않다.

어떻게 살아서 짱구에 있는 집결지에 도착 후 2박 3일을 함께 할 동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택시사건으로 30분이나 늦어버린 덕분에 동료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선사할 수 있었다.
행사 장소가 있는 메데위는 짱구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짱구나 스미냑처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귀국할 때 공항에서 다른 지역 사는 인도네시아 사람이랑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메데위에 있었다고 하니 아예 어딘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서 2박 3일간의 작고 귀여운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사진은 페스티벌의 클라이막스였던 해변 캠프파이어.
산책하면서 봤던 것들
발리의 생태계 엿보기
길소
시내를 벗어나면 방목해서 키우는 소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어느정도냐면 숙소 창문을 열면 보이던 뷰도 소 방목지였다. 발리의 소는 누가 시비 걸든 신경도 쓰지 않는 고매함을 갖춰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길닭
발리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닭이 많다. 물어보니까 식용 혹은 싸움용으로 키운다고 한다.
발리 와서 투계 보는게 로망 중 하나였는데 불법이라 그런지 어디서 하는지 잘 안 알려주려고 하더라. 나같아도 외국인이 타짜 재미있게 봤다며 섯다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어디서 하냐고 물어보면 안 알려줄 것 같다.
찐짝

도심엔 별로 없는데 시골에선 밤에 도마뱀을 쉽게 볼 수 있다. 첨엔 벌레 본 것처럼 놀라서 아ㅏㄱ 리자드! 리자드! 이랬는데 카운터 직원이 친절하게 웃으며 '찐짝'이라고 정정해줬다. 검지손가락 정도의 크기인데 가만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다.
길냥이 & 들개

발리에서 개는 서울의 고양이 포지션이다. 체감상 개가 서울 길고양이만큼이나 많은데 이 동네 사람들이 개를 안 묶고 키우는 것도 한 몫 한다. 겁이 많은지 짖기는 살벌하게 짖는데 물진 않는다. 고양이도 있는데 개만큼 흔하지는 않다.
스피드 갈매기
뭔지는 모르겠는데 나방 수준으로 빠르게 날아다니는 바다새가 있다. 해안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드림카카오

카카오 나무 본 적 있으신지... 살면서 카카오 열매 + 나무를 첨 봐서 신기해서 찍어놨다.
장소들
빈땅마켓
메데위 오기 전 스미냑에서 옷이나 하나 사볼까하고 들렀다가 생각지도 못한 인센스 파트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선반 하나로도 한국의 엥간한 인센스 가게 뺨다구를 후리는데 오만가지 인센스 스틱을 직접 시향해보고 구매할 수 있다.
프쿠타탄 달렘 사원(Pura Dalem Desa Pakraman Pekutatan)
프쿠타탄 달렘 사원은 숙소에서 메데위 해변 가는 길에 있었다. 분위기 원탑이라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사룽(치마처럼 다리에 두르는 천)이 없어가지고 못 들어갔다.
몰래 들어갔나 나오면 누가 뭐라 하겠나 싶지만 예법 무시하면서까지 사리사욕 채우고 싶진 않아서 관뒀다.
메데위 해변
단단한 질감의 검은 모래가 특징인 메데위 해변은 샌들을 신고 걸어도 발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아 산책하기 좋다.
물이 탁하고 파도가 세서 수영을 하기엔 힘들지만 서핑을 즐기기엔 더할나위 없는 해변이라고 한다. 일몰에 해안선 전체가 붉게 물드는데 절경이다.
루나 비치클럽
동료 잘 만나서 살아생전 가볼 일 없던 클럽을 다 가봤다.
다만 루나 비치클럽은 강남 홍대에 있는 그런 클럽보단 테마파크에 가까운 더 가족적인 느낌인데 술 팔고 가끔 EDM도 틀어주는 오션월드를 떠올리면 비슷한 느낌이다. 클럽은 클럽인지 돔페리뇽 시키면 폭죽에 불 붙여서 서빙하고 그런거 해준다.
산책 후기 끝
메데위 -> 루나 비치클럽(짱구) -> 꾸따
비치클럽에서 전례없는 인싸문화를 향유하다 오버플로우가 걸려버려서 몸을 더이상 가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심각해지기 전에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이 때가 오후 10시 조금 안 됐다. 지인그룹과는 비치클럽에서 작별하고 나는 혼자서 꾸따로 이동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와중에 편의점에 들러 파파야 한 팩, 타이거 맥주 사과맛 하나를 챙기고 나시고랭 하나를 호텔로 배달시켰다.
식당은 첫째날 발견한 후 꾸준히 시켜먹었던 Nasi Goreng Lombok인데 너무 맛있어서 귀국할 때까지 같은데서 족히 10번은 시켜먹었다. 다른 메뉴는 기복이 있는데 나시고랭, 미고랭 만큼은 명망높은 셰프, 백화점 푸드코트, 호텔 조식, 인스턴트 다 통틀어서 제일 나았다.
이렇게 3, 4, 5일차는 마무리. 이제 메인 컨텐츠인 아궁산 등반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