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앞 가정집에서 닭을 키우는지 새벽부터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대는 통에 원치 않은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되었다.

가격대비 깔끔하고 전망 좋은 발코니도 있고 물도 하루에 4개나 주는 좋은 숙소인데 진짜 생각지도 못했던게 문제다. 먹던가 팔던가 했으면 좋겠다.

돌 조각 꽃 장식 st

오늘 저녁 드디어 아궁산 정복에 나선다.

​아궁산 등반을 위해 미리 연락한 가이드가 오늘 21시에 픽업을 온다고 했고 이동하는데 2시간쯤 걸리니 23시쯤 등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밤에 산을 타는 이유는 일출 산행이라 그렇다.​

그때까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오늘은 간단하게 꾸따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우선 물자보급도 할 겸 비치워크라는 쇼핑몰에 가보기로 한다.

처음으로 바이크 택시 탠덤을 해봤는데 이동시간도 자동차 반이고 무엇보다 해방감이 끝내준다. 엄마 몰래 일탈하는 기분이랄까. 무서워서 안 하다 교통체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봤는데 진작 할 걸 그랬다.​

계획을 세우고 온 것이 아니라 발 가는대로 돌아다녔는데 어느새 푸드코트에 와 있었다. 마침 배가 고파서 밥을 먹기로 하고 제일 줄을 길게 서 있는 음식점에서 비빔면 + 미트볼 + 만두 세트를 주문했다. 시장의 선택은 언제나 옳기에 여기는 틀림없는 맛집일 것이다.

면은 밍숭맹숭하니 맛없어 보이는데 면에 곁들인 간장소스의 감칠맛이 탁월하고 은근 짭잘한게 간이 잘 맞아서 계속 들어간다. 오히려 기대했던 만두와 미트볼은 국물이 밍밍한데다 평소 먹던 쫀득한 식감이 아닌 물컹한 완자에 가까워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테이블에 뿌리는 소스가 있길래 좀 넣어봤는데 살면서 경험한 스코빌 지수 탑 3안에 들어갈 정도로 매웠다. 근데 또 은근히 땡기는게 지금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왜인지 군침이 돈다. 새디스틱한 매력이 있는 놈이다.

등산 때 먹을 것 좀 쟁여 놓으려고 지하 푸드마켓으로 이동했다.

야간 산행엔 카페인의 힘을 빌려 뇌를 강제로 깨워놓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에너지 드링크를 찾던 와중 레드불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1/3 값인 짭드불을 발견했다. 찾아보니까 크라팅 댕이라고 레드불 원조격의 태국 음료라는데 되려 이놈이 찐드불인 셈이다.

등산 중간 보급식으로는 한국인의 정 초코파이를 지참하기로 하고 6개들이 한 박스를 구매했다.

밖으로 나와서 또 정처없이 걷다보니 한국에서 응커피로 유명한 %아라비카가 있어 들러봤다.

그냥 에어컨 찾아서 들어간 거라 전혀 기대 안 했는데, 아니 살면서 먹은 아메리카노 Top 3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맛있다. 무슨일인지 아메리카노가 핫초코처럼 녹진헸는데 시럽을 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정도 폼이라면 한국에서도 한 번 가볼만하지 싶다.​

비치워크 건너편엔 꾸따 해변이 곧바로 붙어있다. 서핑이 유명한 듯 한데 서핑 강습 호객꾼이 파리떼처럼 들러붙는 통에 손을 휘젓느라 팔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꾸따의 해변걷기는 유쾌한 경험으로 남지 못했다.​

30분 남짓 걸었을까 날씨도 점점 더워지기에 체력 비축을 위해 이만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새 배가 고파져서 호텔 돌아오자마자 전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Nasi Goreng Lombok에서 나시고랭, 치킨밥, 소토 아얌 이렇게 3가지를 시켰다. 이래 시켜도 만원 조금 넘는다. 옳게 된 나라임이 틀림없다.

소토 아얌은 둘째날 가이드 투어할 때 맛있게 먹어서 다시 시켜봤는데 실수로 닭발 버전을 시켜버렸다. Chicken Feet을 얼핏 닭다리라고 생각하고 주문했는데 문자 그대로 닭발이었다. 닭발을 못 먹진 않는데 뼈 발라먹으려니 좀 귀찮아서 그냥 국물만 떠 먹었다.

밥도 먹었겠다 한 숨 때리려는데 낮잠을 잘 못자는 체질이라 잠이 죽어도 안 온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양팔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구글링 해보니 누가 뎅기열 잠복기 증상이래서 가슴이 내려앉는 줄 알았는데 Gemini 선생님한테 여쭤보니 열이 안 나면 뎅기열일 확률은 낮다길래 다시 행복해졌다.

스피드고트6

그렇게 한숨도 못자고 21시가 돼서 옷 입고 나갔다. 요즘 등산할 때 하이킹 부츠를 안 신고 트레일 러너를 신는데 가벼운데 접지도 준수하고 통풍도 잘 돼서 휘뚜루 마뚜루 신고 다니기 좋다. 사진 바지핏 왜이렇게 택견 수련자같이 나왔지.

호텔 로비에서 대기 중인 픽업기사를 접선하고 이제 아궁산 등산로 입구로 떠난다.

[발리 25.5.12] 호주 노인의 동네 꾸따 한바퀴